신분제와 사회 구조
고등학교 한국사 1 · 개념과 유형을 훈련하는 자작 문제 22개와 상세 해설.
예시 문제 해설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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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신분 구조와 천민(노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해설천민의 대부분을 이루던 노비는 재산으로 간주되어 매매와 상속이 가능하였고, 주로 전쟁 포로·죄인·귀족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한 사람 등이 노비가 되었으므로 (3)이 옳다. (1) 청동기 시대에 계급이 발생한 이후 지배층 사이의 위계 서열이 신분제로 발전하였으므로 고대 국가 성립 이전에도 신분 구분이 있었다. (2) 평민은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4) 골품제는 신라가 지배층을 대상으로 마련한 신분제로, 피지배층을 나눈 제도가 아니다. (5)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노비가 되었지 평민으로 격상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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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골품제의 변화와 운영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해설통일을 전후하여 성골 소멸·하위 두품의 평민화 등 변화가 있었지만 골품제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어 개인의 정치·사회 활동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였다. 따라서 '골품제가 폐지되었다'는 (5)가 옳지 않다. 나머지 선지는 모두 교과서 서술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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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라의 어떤 신분층에 대한 설명이다. 이에 해당하는 신분은? 관등표상 오를 수 있는 관등이 아찬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학문적 식견과 실무 능력을 갖추었으나 승진의 벽에 부딪히자, 일부는 당으로 건너가 활동하거나 신라 말 지방 세력과 손잡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모색하였다.
해설오를 수 있는 관등이 아찬(6관등)까지로 제한되었고, 당으로 건너가거나 신라 말 호족과 결합하여 새 사회를 모색한 신분은 6두품이다. (1) 성골은 왕족 최고 신분으로 통일 무렵 소멸하였다. (2) 진골은 최고 신분으로 온갖 특권을 누렸으며 승진 제한을 호소한 계층이 아니다. (4) 5두품은 대나마(10관등)까지 오를 수 있었다. (5) 4두품은 대사(12관등)까지 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