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국권 침탈과 국권 수호 운동
고등학교 한국사 1 · 개념과 유형을 훈련하는 자작 문제 24개와 상세 해설.
예시 문제 해설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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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이 일어난 직후, 일제가 한국 내에서 군사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군사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협정은?
해설전쟁 발발 직전 고종이 국외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한일 의정서(1904)를 강제 체결해 한국 내 군사 요충지를 마음대로 사용하였다. (2) 을사늑약(1905)은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한 조약이다. (3) 한일 신협약은 차관 임명과 군대 해산을 가져온 1907년 조약이다. (4) 기유각서(1909)는 사법권을 빼앗은 조치다. (5)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1910)은 국권을 완전히 강탈한 조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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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한일 협약(재정·외교 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의 결과로 한국에 파견된 고문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해설제1차 한일 협약으로 일본은 재정 고문에 메가타, 외교 고문에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여 한국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하였다. 스티븐스는 일본의 한국 침략이 정당하다고 선전하다가 1908년 장인환·전명운에게 처단되었다. 나머지 짝은 인물의 담당 분야가 뒤바뀌었거나, 이토·데라우치(통감)·헐버트(친한 미국인) 등 협정과 무관한 인물을 잘못 연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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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일제가 한국에 강요한 조약들이다. 체결된 순서대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가)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함 (나) 군사 요충지를 군사 기지로 사용함 (다) 통감의 권한을 강화하고 차관을 임명하며 군대를 해산함 (라) 통치권을 완전히 일본에 양여하게 함
해설(나) 한일 의정서(1904) → (가) 을사늑약(1905) → (다)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1907) → (라)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1910) 순이다. 외교권 박탈은 군사 기지 사용보다 뒤, 군대 해산은 그 이후, 통치권 양여는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