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은행 고등학교 한국사 1a

신분제와 사회 구조

고등학교 한국사 1a · 개념과 유형을 훈련하는 자작 문제 18개와 상세 해설.

객관식 13OX 5 쉬움 3보통 12어려움 3

예시 문제 해설 포함

  1. 객관식 보통

    신라 골품제의 변화와 운영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본래 수도 금성의 지배층을 성골, 진골, 6~1두품으로 구분하였다.
    2. 통일 무렵 성골이 사라지고 3~1두품은 점차 평민과 동등하게 간주되었다.
    3. 골품에 따라 집의 크기나 장식, 마구간 규모 등 일상생활까지 제한받았다.
    4. 진골은 최고 신분으로 국가 중대사 결정에 참여하며 특권을 누렸다.
    5. 통일 이후 골품제가 폐지되어 능력 중심의 관리 등용이 이루어졌다. 정답
    해설

    통일을 전후하여 성골 소멸·하위 두품의 평민화 등 변화가 있었지만 골품제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되어 개인의 정치·사회 활동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였다. 따라서 '골품제가 폐지되었다'는 (5)가 옳지 않다. 나머지 선지는 모두 교과서 서술과 일치한다.

  2. 객관식 보통

    다음은 신라의 어떤 신분층에 대한 설명이다. 이에 해당하는 신분은? 관등표상 오를 수 있는 관등이 아찬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학문적 식견과 실무 능력을 갖추었으나 승진의 벽에 부딪히자, 일부는 당으로 건너가 활동하거나 신라 말 지방 세력과 손잡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모색하였다.

    1. 성골
    2. 진골
    3. 6두품 정답
    4. 5두품
    5. 4두품
    해설

    오를 수 있는 관등이 아찬(6관등)까지로 제한되었고, 당으로 건너가거나 신라 말 호족과 결합하여 새 사회를 모색한 신분은 6두품이다. (1) 성골은 왕족 최고 신분으로 통일 무렵 소멸하였다. (2) 진골은 최고 신분으로 온갖 특권을 누렸으며 승진 제한을 호소한 계층이 아니다. (4) 5두품은 대나마(10관등)까지 오를 수 있었다. (5) 4두품은 대사(12관등)까지 오를 수 있었다.

  3. 객관식 보통

    발해의 신분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지배층 귀족은 모두 말갈 출신으로만 채워졌다.
    2. 평민은 고구려 유민보다 말갈인이 많았으며 대부분 농민이었다. 정답
    3. 천민이 존재하지 않아 귀족과 평민만으로 구성되었다.
    4. 중앙과 지방의 고위 관직은 평민이 독차지하였다.
    5. 신분의 구분 없이 모든 주민이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
    해설

    발해의 평민은 고구려 유민보다 말갈인이 많았고 대부분 농민으로서 나라에 세금을 내고 노동력을 제공하였으므로 (2)가 옳다. (1) 귀족은 고구려 유민이 많았으나 말갈 출신도 있었으므로 '모두 말갈'은 틀리다. (3) 최하층인 천민이 존재하여 귀족·지방 토착 세력에 예속되어 있었다. (4) 고위 관직을 독차지한 것은 귀족이다. (5) 발해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 신분제 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