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성립과 발전
중학교 역사 ② · 개념과 유형을 훈련하는 자작 문제 30개와 상세 해설.
예시 문제 해설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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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왕은? · 3월에서 7월 사이에 곡식을 빌려주고 10월에 갚게 하는 제도를 실시하였다. · 왕위를 형제가 아니라 아들에게 물려주는 부자 상속을 확립하였다.
해설자료의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제도'는 진대법이고, '왕위 부자 상속 확립'도 함께 이룬 왕은 고국천왕이다. (2) 미천왕은 낙랑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으로 영토를 넓혔다. (3) 고국원왕은 전연과 백제의 공격으로 위기를 겪었다. (4) 소수림왕은 불교 수용·태학 설립·율령 반포로 중앙 집권을 다졌다. (5) 광개토대왕은 영토를 크게 넓히고 '영락' 연호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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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해설광개토대왕은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왕을 '태왕'이라 부르며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을 드러냈다. 따라서 (1)이 옳다. (2)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왕은 소수림왕이다. (3)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왕은 장수왕이다. (4) 낙랑군을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을 차지한 왕은 미천왕이다. (5) 진대법을 시행한 왕은 고국천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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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의 정책을 편 고구려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국내성을 기반으로 한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427). · 적극적인 남진 정책을 펼쳐 한반도 중부 지역으로 세력을 넓혔다.
해설평양 천도(427)와 남진 정책을 편 왕은 장수왕이다. 장수왕은 백제를 공격해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475) 개로왕을 전사시켰으며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으므로 (1)이 옳다. (2) 백제 공격으로 전사한 왕은 고국원왕이다. (3) 불교 수용은 소수림왕이다. (4) 낙랑군 축출은 미천왕이다. (5) 왜 격퇴와 '영락' 연호는 광개토대왕이다.